1심 선고를 받고 난 이후로 변호사가 계속 강조한 게 있었어요. 항소 심에서 양형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심리평가 진단서가 정말 중요하다는 거였어요. 기존에 상담사분과는 꾸준히 만나고 있었는데, 상담 기록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하더라고요. 정식 심리평가를 받아야 한다고요.
처음엔 막연했어요. 심리평가가 뭔지, 어떤 기관에서 받아야 하는지도 몰랐거든요. 변호사 추천으로 알게 된 곳들을 몇 군데 살펴봤는데, 비용도 다르고 전문 분야도 제각각이더라고요. 성범죄 사건 양형자료 준비 경험이 많은 곳을 찾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일반 심리평가 기관과 법정 대리 경험이 있는 곳은 정말 달랐어요.
결국 상담사분과 변호사의 의견을 종합해서 한 곳으로 정했어요. 첫 방문 때 정말 긴장했어요. 내 심리 상태, 범행 동기, 성장 과정, 가족관계, 현재의 반성 상태까지 전부 들어낼 준비를 했거든요. 그런데 평가사분이 예상과 다르게 대해주셨어요. 윽박지지도, 판단하지도 않으셨어요. 그냥 차분하게 물어보시고 들으시는 분이셨어요.
평가 과정은 생각보다 길었어요. 심리검사지도 풀고, 면담도 여러 번 했어요. 뭔가를 증명하려는 마음보다는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결국 가장 좋은 자료가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변명하려던 마음은 버렸어요.
진단서가 나왔을 때 정말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어요. 단순한 '반성하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아니라, 내 심리 구조,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지금은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가 전문적 언어로 정리돼 있었어요. 변호사가 이걸 가지고 항소장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 뭔가 한 발 내딛는 느낌이 들었어요.
다만 한 가지 배운 거 있어요. 진단서의 품질은 정말로 평가사의 역량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예요. 싼 기관, 빠른 기관도 있겠지만, 결국 이 문서가 법정에서 내 처벌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봐요. 상담사나 변호사 추천을 무시하고 혼자 결정했다면 아마 후회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진단서를 들고 변호사와 함께 다음 단계를 준비 중이에요. 심리평가가 항소 심의 모든 답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창이 됐다는 게 다행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