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선고받고 나서 한 2년쯤 지났을 때, 동네 텃밭 모임에 나가라고 권해준 사람이 있었어요. 상담사였는데, 약속 시간이 아닌데도 문자를 보낸 거예요. "집에만 있으면 생각이 자꾸 돌아온다고 하셨잖아요. 손이 움직이면 마음도 쉬어진다고 합니다." 그때는 솔직히 거부감이 있었어요. 텃밭이라니, 무슨 그런 게 도움이 될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남편이 옥중에서 보낸 편지 중에 이런 말이 있었어요. 엄마가 옛날에 우리 집 뒷마당에서 고추랑 상추를 키웠는데, 자기도 그렇게 뭔가 손으로 가꾸는 걸 해보고 싶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쓰여 있었지만, 그 한 줄이 자꾸 떠올랐어요. 결국 다음 주에 텃밭 가는 날 같이 가보기로 했어요.
처음 갔을 땐 어색했어요. 내가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몰랐으니까요. 근데 할머니 한 분이 다가와서 자기 구간에서 상추 심는 거 배우라고 하셨어요. "무섭지 마, 죽지도 않는 게 식물이야. 물만 줘도 자란단 말이야." 그 말이 좋았어요. 정말 단순한 말인데, 그때는 그 말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매주 금요일마다 가게 됐어요. 봄에는 모종을 심었고, 여름엔 수확도 했어요. 손이 흙에 묻고, 손톱 안쪽이 검게 되고, 때론 벌레 물린 데가 생겼어요. 근데 그게 이상하게 괜찮았어요.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으니까요. 내가 만든 물 주기 일정이 있고, 내가 뽑은 풀들이 쌓이고, 내가 딴 채소들이 집에 가는 거예요. 누가 평가하지도 않는 그냥 내 것.
양형자료를 준비할 때는 그것도 몰랐어요. 상담사가 일상 회복 부분에 '텃밭 활동 참여, 지역사회 적응' 이렇게 써달라고 했을 때 순간 뭔가 비웃음이 나왔어요.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판사님이 판결문에서 그 부분을 언급하셨어요. 실명은 안 하셨지만, '피의인의 배우자가 지역사회 연결 활동을 통해 가족 전체가 회복 의지를 보이고 있으며'라는 표현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텃밭은 증거를 위한 활동이 아니었어요. 처음엔 그런 거였어도, 지금은 그냥 내가 필요한 것이 되었거든요. 남편도 나가서 더 자주 보고 싶다고 했어요. 요즘은 상추가 자라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편지에 붙여 보냅니다. 작은 것 같지만, 누군가는 이게 희망이라고 부르는 걸까요. 아무튼 흙 묻은 손이 이전보다는 덜 떨리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