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을 받았을 때 손이 떨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종이에 검은 글씨로 박혀 있으니 다른 느낌이었어요. 그날은 변호사님 사무실에서 나와 카페에 앉아만 있었습니다. 커피도 식고, 사람들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그 이후 3개월이 흘렀습니다. 처음 한두 달은 시간이 정말 느렸어요. 매일이 똑같았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심리상담을 계속 받고 있었는데, 상담사님은 "지금은 정보 처리 중"이라고 표현하셨어요. 판결이라는 현실을 마음이 천천히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두 번째 달쯤부터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남편은 이미 몇 주 전부터 일상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는데, 저는 그게 이해가 안 됐어요. 어떻게 저렇게 빨리 일상이 돌아갈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상담사님과 그 얘기를 했더니 웃으시면서 "남녀가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다"고 하셨어요. 남편은 이미 선고라는 "끝"을 맞이했으니 그 이후를 사는 거고, 저는 아직도 그 시간 속에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세 번째 달에는 텃밭에 나갔어요. 지난겨울 방치했던 밭을 정리하면서 뭔가 확실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손을 흙에 묻히고, 잡초를 뽑고, 올봄 심을 것들을 계획하는 동안 마음이 한 곳에 모였어요. 처음으로 "내가 지금 여기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전의 저는 몸은 밭에 있지만 머리는 법정에 있었거든요.
요즘은 일상이 정말로 돌아오고 있는 중입니다. 밥을 먹으면서 밥 맛을 느끼고, 이웃 할머니와 나눈 대화가 우리 집 식탁 주제가 되고, 저녁에 남편과 내일 계획을 나눕니다. 이런 것들이 당연하게 느껴지니까요. 물론 가끔은 판결 기사를 우연히 마주칠 때도 있고, 밤에 갑자기 그 날의 기분이 떠오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는 상담사님 말씀을 떠올립니다. "그냥 그 감정이 찾아온 거니까 인사하고 보내주세요."
지금 양형자료를 준비하는 분들이 계시면, 선고 후가 또 다른 과정이라는 걸 말씀해주고 싶어요. 판결이 끝이 아닙니다. 그 이후 어떻게 살아갈지, 우리 가족이 어떤 모습으로 돌아갈지를 결정하는 시간이 시작되는 거예요. 심리상담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도 천천히, 자기 속도대로 가시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