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있고 2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은 이게 정말 내 삶이 맞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깨달은 게 있어요. 변화는 거창한 순간에서 오는 게 아니라, 흙을 만지고 있을 때 조용히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작년 초에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의사선생님이 "뭔가 손으로 하는 활동, 반복적이고 결과가 눈에 보이는 걸 추천합니다"라고 말씀했어요. 트라우마 진단서를 받으러 갔을 때도 그렇고, 남편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제 정신 상태는 정말 심각했거든요. 밥을 못 먹기도 했고, 밤에 자다가 깨서 울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권유를 받은 그대로 동네 텃밭 모임에 참여했는데, 처음 몇 달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누가 물어볼까봐 두렵고, 남편 얘기가 나올까봐 예민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두려움 속에서도 뭔가 바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씨앗을 심고, 싹이 나오고, 자라나고, 열매를 맺는 과정을 보면서 제 마음도 함께 자라났다고 할까요. 봄에 심은 상추가 여름에 무성해지고, 가을에 고추를 따다 보니까, 내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진짜로 느껴졌습니다. 의사선생님이 말씀한 '반복적이고 결과가 눈에 보이는' 그것이 정확히 이거였어요.
지난주에 있었던 일인데요. 동네 할머니가 제가 가꾼 텃밭 구석을 보고 "어어, 당신이 이것까지 했어?" 하면서 웃었습니다. 저도 그 순간 웃음이 나왔어요. 그게 정말 신기했습니다. 2년 전에는 남편 때문에 남편이 아니어도 모든 게 다 죄책감처럼 느껴졌는데, 그날은 순수하게 제 손이 만든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거든요.
심리상담사는 제 진단서에 "적응적 대처 능력 회복 중"이라고 적었습니다. 처음엔 그 말이 뭔가 거창하게 들렸는데, 지금은 알겠어요. 그건 뭔가 거창한 성공이나 원점으로의 돌아감이 아니라, 텃밭에서 흙을 만지면서 "아, 나도 뭔가 할 수 있겠네" 하고 느끼는 그런 작은 변화를 말하는 거였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남편 문제는 풀려야 할 것이 남아있고, 가끔은 그 무게가 어깨를 누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텃밭에서는 그 무게가 좀 더 가볍게 느껴집니다. 이게 뭔가 깊은 깨달음이나 치유 같은 건 아닐 거예요. 그냥 손이 흙에 잠겨있을 때는 다른 것들을 잠깐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같은 상황에 계신 분들도 혹시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볼 수 있는 활동을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꼭 텃밭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손뜨개, 그림, 요리, 뭐든 좋습니다. 남편 사건도 중요하고 양형자료 준비도 중요하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의 마음을 놔두지 말아야 한다는 걸 제가 몸으로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