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1심 선고 한 달 전쯤 심리평가를 한 번 더 받아보라고 했어요. 처음 수사 단계에서 받은 상담 기록도 있지만, 법원이 판단할 때 최신 자료가 도움이 된다는 거였습니다. 처음엔 또 다른 심리상담인가 싶었는데, 이번 건 평가라고 하더라고요. 뭔가 다른 건가 싶으면서도 일단 예약했습니다.
평가 기관은 법원 지정 기관이었어요. 처음 받던 곳과는 달랐습니다. 상담사도 다르고, 검사 방식도 더 체계적이었어요. 초기 수사 때는 솔직하게 심정을 이야기하는 쪽이었다면, 이번엔 표준화된 검사지를 풀고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심리 상태를 수치화하고 해석하는 거였어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상담사가 판단만 하고 조언은 안 한다는 거였습니다. 처음 상담할 때는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대처해보세요" 같은 제안도 있었는데, 평가는 순수하게 현재 상태만 기록하는 거더라고요. 그게 객관성 때문이라고 설명해줬습니다. 법원에 제출될 자료니까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었어요.
결과는 두 주일 뒤에 나왔어요. 서류를 받아들고 읽으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 심리 상태를 글자로 본다는 게 낯설었어요. 우울감, 불안감, 자기비난 수준 같은 항목들이 수치로 표시되어 있었고, 각 항목 옆에 해석 글이 붙어 있었습니다. 객관적이면서도 약간 차갑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변호사는 이게 양형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거라고 했습니다.
변호사가 말하길 판결부가 원하는 건 진정성 있는 반성보다는 구체적인 심리 상태 변화와 현재의 안정성이라는 거였어요. "이 사람이 지금 얼마나 영향을 받고 있고, 얼마나 통제 가능한 상태인지" 그것을 법원이 본다고 했습니다. 평가 결과에서 내 불안감이 높지만 충동성은 낮고, 사회 적응력은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부분이 중요하다고 설명했어요.
읽으면서 한 가지 느낀 게 있었어요. 심리평가라는 게 내 현재 상태를 객관화하는 과정이라는 거였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쯤 서 있고, 어떤 상태이고, 앞으로 어떻게 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전문가 입장에서 해석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내가 느낀 감정이나 의도보다는 측정 가능한 지표가 중요했어요.
1심 판결까지 열흘 정도 남았어요. 평가 결과가 판결에 실제로 어떻게 반영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변호사도 확실하게는 못 했어요. 다만 이 평가가 판사에게 전달되고, 판사가 그걸 읽고 판단한다는 사실이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내 심리 상태가 법정 기록이 된다는 게 좀 묘했어요. 어쨌든 현재의 내 모습이 객관적으로 기록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마음이 놓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