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을 받아 들고 나오는 길이 정말 길게 느껴졌어요. 변호사님은 결과가 나쁘지 않다고 말씀해주셨는데, 법정에서 내려온 계단 한 칸 한 칸이 왜 그렇게 무거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날 저녁에 상담 예약이 잡혀 있었어요. 원래는 심리진단서를 위해 다니던 건데, 이미 판결이 난 후였거든요.
상담실에 들어앉자마자 눈물이 나왔습니다. 상담사님께서 "어떤 부분이 힘드세요"라고 물었을 때 대답이 안 나왔어요. 합의도 했고, 처벌도 받았고, 모든 절차가 끝났는데도 왠지 뭔가 덜 끝난 것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판결문 숫자들을 자꾸만 떠올렸어요. 벌금, 집행유예, 보호관찰 기간 같은 것들이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상담사님이 차를 건네주시면서 "숫자로 끝나지 않는 부분들이 있죠"라고 하셨어요. 그 말씀에 또 눈물이 났습니다. 지금 제 상태는 법적으로는 정해진 거지만, 심리적으로는 아직 많은 일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걸 느꼈거든요. 가족들과의 관계도 그렇고, 스스로에 대한 자책도 그렇고요.
이번 상담 이후로 처음 생각해본 게 있습니다. 양형자료 준비할 때는 전략적으로 생각했어요. 어떤 진단서를 받을지, 어떤 근거를 제시할지만 집중했거든요. 하지만 판결 후에는 달라도 정말 다릅니다. 이제는 숫자가 아니라 실제 생활 속에서 뭘 어떻게 바꿔나갈지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텃밭에서 일할 때도 생각이 많아집니다. 흙을 만지면서 "내가 여기까지는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아직 할 일이 산더미지만, 최소한 멈춘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게 다인 줄 알았는데, 판결 후가 실제로는 시작이었던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