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월요일 퇴근길에 심리상담센터 예약을 했어요. 사건 후 처음입니다. 법원에서 양형자료로 진단서를 제출하라고 했을 때는 솔직히 마음이 복잡했는데, 변호사님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해서 신청했거든요.
상담사분은 40대 여성분이셨어요. 첫 시간이라 자기소개부터 시작했는데, 저는 뭘 말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시간표만 읽어줬어요. 출근시간, 퇴근시간, 헬스장 가는 시간. 상담사분은 웃으시더니 "지금 당신이 유지하고 있는 루틴이 가장 중요한 거 아실까요"라고 물어보셨습니다.
생각해보니 작년 이맘때만 해도 저는 루틴 같은 게 없었어요. 사건 이후 한 달간은 집에만 있었고, 그 다음엔 뭘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있었던 것 같아요. 아내는 아이들 데리고 외출하고, 저는 혼자 남겨져 있었죠.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는데, 당시엔 그걸 깨닫지 못했어요.
상담사분은 이번 달부터 간단한 일기를 쓰라고 했어요. 거창한 성찰 일기가 아니라, 그냥 하루 중 "잘했다"고 생각하는 부분 하나씩만 메모하라는 거였어요. 출근했다, 점심을 챙겨 먹었다, 아이들이 던진 장난감을 치웠다, 이런 식으로요. 저는 좀 이상하다고 했는데, 상담사분이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건 큰 깨달음이 아니라 작은 증거들입니다.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 말이에요"라고 말씀하셨어요.
출퇴근 버스 안에서 그 말이 계속 맴돌았어요. 변하고 있다는 증거. 그동안 저는 처벌을 받는 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상담사분 입장에선 저를 "변화 중인 사람"으로 본 거네요. 미묘하지만 다른 느낌이었어요.
어제 밤부터 시작했습니다. 퇴근 후 헬스장에서 30분 운동하고 돌아왔을 때, 아들이 "아빠 운동했어?"라고 물었어요. 저는 웃으면서 "응"이라고 했고, 그걸 일기에 썼어요. 아이가 아빠의 일상을 챙기기 시작했다는 게 잘했다고 생각한 부분이었거든요. 사실 그건 아이의 변화인데, 저는 그것을 알아차린 제 자신을 칭찬하고 싶었어요.
상담사분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지금 필요한 건 "나는 반성했다" 같은 큰 선언이 아니라, 매일 아침 일어나서 직장에 가고, 저녁에 가족과 밥을 먹고, 작은 일들을 제때 챙기는 것. 그게 증거가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양형자료로 제출할 진단서도 그런 증거 중 하나겠죠.
다음 상담은 2주 뒤입니다. 그때쯤이면 일기가 꽤 쌓여 있을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