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 상담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되면서 처음으로 달력을 다시 들었어요. 예전에는 달력 같은 걸 볼 수가 없었거든요. 시간이 흘러가는 게 무섭고, 언제쯤 이 모든 게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날짜를 세는 건 악몽 같았어요. 근데 요즘은 다릅니다. 수요일 상담 일정, 월요일 교육 수강, 마감일 같은 것들을 직접 표시하면서 뭔가 제 삶이 다시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어요.
사실 검사님 면담 이후 처음 몇 달은 정말 혼란스러웠어요.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 얼마나 오래 이렇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명확하게 알려줄 수 없었거든요. 변호사님은 앞으로의 절차를 설명해 주셨지만, 실제로 제 몸과 마음으로 그걸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러던 중에 한 선배님이 자신의 일정표를 보여 주셨는데, 정말 꼼꼼하게 모든 걸 기록해 놓으셨더라고요. 상담 날짜, 진단서 갱신 예정일, 교육 수강 마감까지. 그때 저도 따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구글 캘린더에 입력했는데, 손으로 직접 종이 달력에 쓰는 게 훨씬 낫다는 걸 깨달았어요. 펜을 들고 숫자를 적는 그 과정에서 뭔가 마음이 차분해져요. 매주 수요일에 가는 상담 약속, 그리고 그 상담에서 나오는 진단 소견들. 외부 교육을 이수하면서 그 증명서를 받는 날짜들. 모든 것이 화살표처럼 앞을 향해 있다는 걸 눈으로 직접 보니까 좀 달라졌어요.
가장 큰 변화는 일정을 관리하면서 불안감이 줄었다는 거였어요. 예전에는 매일이 똑같은 것 같고, 앞이 안 보이는 막연한 느낌만 있었는데요. 이제는 "아, 이번 달 말쯤이면 다음 진단서 갱신 신청을 해야지"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됐어요. 작은 마일스톤들을 하나씩 지나갈 때마다 체크 표시를 하는데, 그 느낌이 정말 특별해요. 마치 어딘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는 증거가 남아 있으니까요.
일기를 매일 쓰는 것도 그 일정 관리와 연결되는 것 같아요. 일기에는 그날의 감정도 있지만, 앞으로의 할 일도 함께 적어두거든요. 다음 주 상담에서 뭘 말씀드릴지, 이번 달 교육은 언제 마감인지. 이렇게 정리해 두니까 마음이 한결 가볍고 준비된 느낌이 들어요.
요즘 제 달력은 그냥 날짜를 세는 도구가 아니라, 제 회복 과정을 기록하는 지도처럼 느껴져요. 모든 동그라미 표시와 메모들이 모아져서 언젠가는 이 과정을 뒤돌아볼 수 있게 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 날까지 하루하루를 제 속도대로, 하지만 분명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