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송치 이후 변호사를 선임했을 때 가장 먼저 받은 조언이 "양형 의견서를 준비하세요"였습니다. 그때는 솔직히 그게 뭔지도 제대로 몰랐어요. 판사한테 "저 이 정도면 괜찮은 사람입니다"라고 보내는 편지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실제로 진행하다 보니 훨씬 복잡하고 중요한 문서더라고요.
변호사가 처음 제시한 양형 의견서 초안은 정말 형식적이었습니다. 제 프로필, 범행의 경위, 사건 이후 반성 태도, 그리고 양형 감경 사유들이 법률 조항 기준으로 정렬되어 있었거든요. 읽고 나니 "이게 맞나?" 싶었어요. 제가 느낀 반성과 변화가 정말 담겨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변호사한테 "제가 직접 쓴 부분도 들어갈 수 있냐"고 물었고, 다행히 "참고자료 형태로 추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제 버전의 양형 의견서를 따로 정리했습니다. 외래 상담을 받으면서 느낀 구체적인 변화, 교육을 이수하면서 깨달은 점들, 일상에서 실제로 달라진 행동 패턴들을 시간 순서대로 기록했어요. 변호사가 쓴 것처럼 법률 용어를 쓰려고 애쓰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있는 그대로를 썼어요. "외래 상담 4회차쯤부터 제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직면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식으로요.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진정성이었습니다. 판사는 수백 건의 의견서를 봐온 사람이니까, 뻔한 반성문이나 과장된 다짐은 바로 눈에 띠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가 아직도 어렵고 불완전한 부분이 있다는 걸 솔직하게 썼습니다. "완전히 나았다"는 식의 주장보다는 "현재 진행형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표현을 더 많이 썼어요. 외래 상담사가 준 진단서에도 "앞으로의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문구가 있었는데, 그걸 부정하기보다는 그 위에서 제가 구체적으로 뭘 할 건지를 썼습니다.
변호사 버전과 제 버전을 합쳐서 법원에 제출했을 때의 느낌은 이상했어요. 뭔가 완결된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이게 정말 도움이 될까"하는 불안감도 있었거든요. 근데 1심 선고 직전 공판에서 판사가 "피고인께서 성실하게 상담을 이수하고 자신의 사건에 대해 깊이 있게 고찰하신 흔적이 보입니다"라고 언급했을 때 조금 안심이 됐습니다. 최소한 의견서가 읽혔다는 증거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니 양형 의견서는 단순히 "처벌을 줄여달라"는 청원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 사건을 통해 제가 어떤 과정을 거쳤고, 앞으로 뭘 할 건지를 제 말로 정리하는 작업이었어요. 변호사가 법률가로서 전략적으로 쓴 부분과 제가 당사자로서 솔직하게 쓴 부분이 섞여 있어야 그제야 판사 입장에서도 "이 사람이 누구인지" 제대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아직 의견서를 준비 중인 분들이 있다면, 변호사 피드백은 받되 제 목소리도 꼭 넣으시길 권합니다. 그게 진짜 효과 있는 의견서가 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