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법원에서 집유를 선고받고 나왔다. 마지막 공판 끝나고 법정을 나오는 순간, 손에 들린 서류 묶음이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그 안에는 지난 6개월간 내가 모아둔 것들이 들어있었다. 진단서, 외래 상담 기록지, 교육 이수증. 처음엔 이런 게 정말 도움이 될까 싶었는데, 검사님 면담 때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보이셨다.
사건 초기에는 정신없었다. 경찰 조사, 검찰 송치, 그 사이 변호사님은 자비로 진단을 받아둘 것을 권했다. 나는 그때 거의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첫 진단을 받으러 가던 날 기억난다. 의사선생님과 한 시간가량 대화하면서 내 상태를 진지하게 설명해야 했다. 약을 끊으니 겪는 신체 증상, 수면 문제, 그리고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됐는지에 대해. 그 과정이 꽤 힘들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설명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외래 상담은 매주 정기적으로 다녔다. 변호사님은 상담 횟수와 기록이 양형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처음엔 의무감으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상담 시간이 내게 필요한 시간이 됐다. 상담사님은 내가 뭘 잘못했는지 따지지 않았다. 대신 내가 왜 약에 의존했는지, 지금부터 뭘 해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그 기록들이 쌓이면서 나도 변하는 게 느껴졌다. 객관적으로 내 상태가 나아지고 있다는 걸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교육 이수도 꽤 적극적으로 찾아서 했다. 자비로 프로그램을 더 하는 것이 나중에 "충분히 반성했고 개선 의지가 있다"는 증거가 된다고 했으니까. 온라인, 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관련 교육을 들었다. 물론 처음엔 형식적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들으면서 내가 몰랐던 것들, 내 행동이 미쳤을 영향들을 배우게 됐다. 이수증 한 장 한 장이 단순한 서류가 아니라, 내가 이 기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보여주는 증명이 된 셈이다.
검사님과의 면담에서 변호사님은 이 모든 서류를 펼쳐 보였다. 진단서, 상담 기록, 이수증들. 검사님은 꽤 오래 살펴보셨다. 그리고 "충분히 준비하셨네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한마디가 6개월간의 과정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단순히 시간을 때운 게 아니라, 정말 뭔가를 했다는 증거를 제시한 것이다.
공판 때 판사님도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자발적으로 상담과 진단, 교육을 이수한 점을 감안하여"라고 명시했다. 그 문장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내가 한 선택들이 실제로 인정받고 있다고 느꼈다. 감경이 됐다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이 기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걸 법정에서 공식적으로 기록에 남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지금 집유 생활 중이지만, 이 경험이 내 인생에서 헛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단순히 처벌을 피했다는 차원이 아니라, 내가 정말 변했다는 걸 내가 가장 먼저 알았기 때문이다. 진단서와 상담 기록은 법정의 언어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그 기간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기록한 일기장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