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 상담을 받으면서 상담사가 자꾸 "일주일 단위로 계획을 세워보세요"라고 권해요. 처음엔 그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어요. 달력에 출근 날짜 표시하고, 상담 시간 적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어요.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일종의 증거가 되고,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이 곧 제 성실성을 보여주는 거라는 걸요.
지난 3개월 동안 제 일정 관리 방식이 확 바뀌었어요. 처음엔 종이 달력에만 적었는데, 이제는 휴대폰 앱에도 기록하고, 매주 일요일 저녁에 다음 주 계획을 정리해요. 금요일에는 그 주에 뭘 못 했는지 체크해요. 처음엔 이게 또 다른 강박이 될까봐 걱정했어요. 하지만 검사님이 향후 조사에서 제 일정표를 볼 수도 있다고 했을 때, 계획표의 의미가 달라졌어요.
제일 어려웠던 건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거였어요. 직장에서 갑자기 야근을 하게 되면, 그날 저녁에 하려던 독서 시간이 밀려요. 처음엔 계획이 틀어질 때마다 짜증이 났어요. 근데 상담사가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 계획을 세우려는 노력 자체가 중요하다"고 했어요. 그 말이 박혔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계획을 수정해도 괜찮다는 걸 배웠어요. 중요한 건 그 수정 과정도 기록하는 거였어요.
요즘 저는 매주 목요일 점심시간에 다음 주 틀을 짜요. 근무 시간 내에 10분씩만 써요. 회사 시스템의 일정 관리 탭에 개인적인 일정도 함께 저장해요. 출퇴근 시간, 상담 날짜, 도서관 방문 계획, 집에서 할 산책, 심지어 친구와의 만남까지. 예전엔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이렇게 기록하다 보니 제 하루하루가 보여요.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는지, 얼마나 성실하게 지내고 있는지가 한눈에 들어와요.
가장 큰 변화는 불안감이 줄어들었다는 거예요. 예전엔 '내가 지금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어요. 잠깐의 여유 시간이 생기면 그걸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떨렸어요. 근데 계획표가 있으니 명확해요. 만약 계획 시간이 비었다면, 그건 제가 정말로 쉴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게 확실해지니까. 양형 자료를 생각하면서 계획을 세우는 건 처음엔 위선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반 년을 이렇게 살다 보니, 이게 진짜 제 일상이 됐어요.
요즘 가장 자랑스러운 건 제 계획표를 상담사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거예요. 상담사가 "조용한밤님의 주말은 균형잡혀 있네요"라고 한 말이 아직도 귀에 맴돌아요. 누군가 제 일정을 봐주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준다는 게 이렇게 소중할 줄 몰랐어요. 이제 계획을 세우는 건 더 이상 양형 자료를 위한 도구가 아니에요. 그건 제가 제 삶을 주도적으로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됐어요. 매주 일요일이 오면 다음 주를 기대하는 제 모습이 낯설어도, 그게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