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밤을 자야 낮이 보여요

🌲· 약 2개월 전· 👁 13· ♥ 5· 💬 7

사건 초반에는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밤새 천장을 바라보다가 새벽 4시쯤 되면 한두 시간 우악 쏟아지는 식이었는데, 아침이 되면 또 벌떡 깨곤 했습니다. 심리상담사가 "수면이 가장 먼저 무너진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어요. 남편 사건이 터지고 나서 저는 거의 3개월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상담을 계속 받으면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게 있어요. 몸이 안 좋으면 판단력도 흐려지고, 판단력이 흐려지니까 또 불안해진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기본적인 게 수면과 식사라고 했어요. 마치 기울어진 책상 다리를 먼저 반듯이 놓아야 하는 것처럼요.

저는 그때부터 아주 의도적으로 루틴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10시 반에 침실 불을 끄기로 했어요. 그 전에 핸드폰도 거실에 놔두고,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요즘 유행하는 수면 유튜브를 틀었습니다. 처음엔 별 효과가 없었지만 3주쯤 지나니까 달라졌어요. 11시쯤이면 자연스럽게 졸음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식사도 마찬가지였어요. 변호사 비용 때문에 식비를 많이 줄여야 했는데, 오히려 그게 도움이 됐습니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계란 하나, 밥 한 공기, 미역국을 먹는 것으로 정했어요. 점심은 남은 반찬으로 먹고, 저녁은 가족과 함께 앉아서 먹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거창하지 않지만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양을 먹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안정됐어요.

상담사가 양형자료 진단서를 작성해 주실 때 수면과 식사 루틴에 대해 물어보셨어요. "얼마나 규칙적으로 잠을 자고 있습니까?" "하루에 몇 끼를 거르지 않고 먹고 있습니까?" 이런 식으로요. 그때 처음 깨달았는데, 이런 기초적인 자기관리도 결국 양형자료에 담길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법원에서는 단순히 "반성하겠습니다"라는 말보다 몸과 마음으로 보여주는 변화를 봅니다.

지금은 2년이 지났고 저는 거의 매일 밤 10시에 자고 6시 반에 깹니다. 주말에도 마찬가지예요. 처음엔 무의식적인 강박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이 루틴이 저를 지탱하는 기둥 같은 거 되었습니다. 텃밭에 나갈 때도 일찍 자야 밝을 때 나갈 수 있고, 동네 모임에 가서 웃을 때도 충분히 잔 몸이 다르다고 느껴요.

혹시 지금 밤을 못 주무시는 분 있으시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당장 모든 게 나아질 순 없지만, 한 번에 30분씩이라도 일정한 시간 수면을 확보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그것도 일종의 성의 있는 노력으로 충분합니다.

다시봄을 의 다른 글

전체 보기 →

댓글 7

🌲· 약 2개월 전
기울어진 책상 다리 비유가 와닿네요. 그 기초가 맞아야 판사님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 약 2개월 전
저도 그 루틴이 실제로 양형자료에 반영되는 부분을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 약 2개월 전
그럼 변호사분도 그 루틴 부분을 양형자료에 어떻게 담으라고 하셨어요?
🌲· 약 2개월 전
저도 처음엔 그게 양형자료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어요.
🌲· 약 2개월 전
기초를 다지는 그 시간들이 나중에 정말 큰 힘이 되네요.
🌳· 약 1개월 전
계란 하나, 밥 한 공기, 미역국... 이렇게 단순한 게 제일 강하더라고요.
🌲· 약 1개월 전
정말 그렇죠. 그런 단순한 것들이 마음을 지탱해주는 것 같습니다.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로그인 →

Q&A 심리·정서 의 다른 글

전체 보기 →
항소심 준비하면서 처음 받은 진단서[3]N🌲반성문앞에서·07:50동네 분들이 모이는 날, 처음 얼굴을 내밀었어요[4]🌲다시봄을·05:43합의금 외에 챙겨야 할 것들[6]HOT🌲다시봄을·07-23교육 이수 중에 처음 울었어요[4]HOT🌲반성문앞에서·07-22진단서 받으러 가는 길[8]HOT🌲다시봄을·07-21항소심 법정에서 떨린 손[4]HOT🌲다시봄을·07-19선고 1년, 일상에 자리잡은 것들[8]HOT🌲반성문앞에서·07-19텃밭에서 손이 흙색이 되는 날[6]HOT🌲다시봄을·07-17피해자 대면 프로그램 다녀온 날[7]HOT🌲다시봄을·07-15상담사가 제안한 '저녁 준비' 시간[7]HOT🌲다시봄을·07-14선고 후 첫 달, 일상이 낯설었어요[6]HOT🌲반성문앞에서·07-14항소심 준비하며 처음 받은 질문[6]HOT🌲다시봄을·07-13밤 11시에 밥을 먹는 이유[6]HOT🌲다시봄을·07-11선고받고 3개월, 일상이 돌아오는 중입니다[6]HOT🌲다시봄을·07-10합의 전에 상대방 심정을 물어본 변호사[8]HOT🌲다시봄을·07-091심 판결 후 상담사가 바뀐 이유[6]HOT🌲다시봄을·07-08텃밭 가꾸다 이웃을 만났어요[8]HOT🌲다시봄을·07-07아내와의 대화가 늘었어요[8]HOT🌲다시일어선·07-06합의금 액수를 정할 때 상담사와 싸웠어요[6]HOT🌲다시봄을·07-061심 판결 앞두고 변한 것들[9]HOT🌲반성문앞에서·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