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에 동네 텃밭 모임에 나갔어요. 작년 겨울만 해도 집에만 있고 싶었는데, 남편 일이 있은 지 2년쯤 지나니까 조금씩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거든요. 상담사 선생님도 그럴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나가게 된다고 했었고요.
텃밭은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 공동 주말농장이었어요. 처음엔 낯선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한 구석에만 있으려고 했는데, 옆 밭을 가꾸던 할머니가 상추 모종을 몇 개 주셨어요. 그걸 심으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됐어요. 날씨 얘기, 텃밭 관리법, 그리고 가족 얘기까지.
할머니한테 우리 집 상황을 다 말한 건 아니에요. 그냥 "가족이 어려운 시간을 겪었다"는 정도만 꺼냈는데, 할머니가 그렇게 중한 얘기를 했을 때 오히려 자신도 며느리 문제로 몇 년을 괴로워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면서 참 신기했어요. 우리 같은 상황인 사람들이 이렇게 가까이 있었구나 싶으면서도, 동시에 누구나 뭔가 짐을 지고 산다는 게 느껴졌달까요.
이후로 텃밭에 나갈 때마다 할머니를 만났어요. 할머니는 제 가는 날마다 새로운 반찬을 챙겨주셨고, 저는 남편이 좋아하던 깻잎을 심어서 자라나는 모습을 할머니랑 함께 봤어요. 어느 날은 할머니가 "힘든 시간도 지나가는 거야, 꽃도 피고 열매도 맺으니까"라고 하셨는데, 그건 위로라기보다 그냥 할머니 인생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라는 게 느껴져서 더 좋았어요.
상담사한테 텃밭 모임 얘기를 했을 때 선생님이 "좋은 거네요, 그런 관계"라고 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누군가 앞에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판단받는 일 없이, 그냥 옆에서 함께 뭔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을 나누는 관계. 그게 가장 편했어요. 양형자료 때문에 많은 사람 앞에서 우리 사정을 얘기해야 했던 것과는 정말 달랐어요.
지금도 매주 텃밭에 나가요. 깻잎도 잘 자라고 있고, 할머니도 잘 지내고 계세요. 내 마음이 완전히 나아졌다고는 못 해도, 적어도 텃밭 가는 길에는 숨이 좀 더 편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 없는 곳에서,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살아가는 게 이런 거구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