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판결문을 받아들고 석 달쯤 지났을 때였어요. 변호사님이 항소를 권유했고, 남편도 제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때 저는 너무 피곤했어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상담사 선생님과 만나면서 생각이 좀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상담실에서 상담사가 물었어요. "항소를 하고 싶으신 건가요, 아니면 해야 한다는 심정인가요?" 그 질문이 정말 날카로웠습니다. 저는 둘 다라고 답했는데, 사실은 피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1심에서 나온 결과도 힘들었는데, 또다시 법정에 가서 같은 말을 반복하고 판사를 마주하는 일이 두려웠어요. 상담사는 그 두려움이 자연스럽다고 했습니다. 누구나 그렇다고요.
항소심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저는 1심과 항소심의 차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변호사님 설명도 들었지만 막상 마음에는 들어오지 않았던 거죠. 상담사와 함께 천천히 풀어내면서, 항소심은 새로운 증거나 주장을 제시할 기회라는 게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즉, 1심과는 다른 접근이 가능하다는 뜻이었어요.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양형자료를 다시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1심을 위해 이미 한 번 준비했는데, 항소심을 위해 또 준비해야 한다는 게 감정적으로 너무 무거웠거든요. 상담사는 "지금의 당신의 상태를 그대로 담으면 된다"고 했어요. 그건 반복이 아니라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라고요. 1심 이후 2년을 더 살아낸 저의 모습, 남편과의 관계 변화, 아이들의 성장, 직장에서의 회복 과정 같은 것들을 새롭게 기록하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조금 달라졌어요. 제가 단순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게 아니라, 이 시간들이 정말 저희 가족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말하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여전히 불안하고, 또다시 법정에 서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철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상담사와의 대화를 통해 항소심을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준비할 수 있는 기회로 보게 된 것 같아요.
이제 변호사님과 본격적으로 항소 전략을 짜기로 했습니다. 상담사는 이 과정 자체가 저를 안정시킬 거라고 했어요. 실제로 막연한 불안에서 구체적인 준비 과정으로 넘어가니까 조금 더 견딜 수 있는 기분이 들어요. 항소심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단계일 뿐이라는 걸, 천천히 받아들이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