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성문 쓸 때 밥을 못 먹었던 날들

🌲· 약 2시간 전· 👁 18· ♥ 0· 💬 3

남편 사건이 접어들고 나서 깨달은 게 하나 있어요. 우리 가족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구분하는 방식이 따로 있다는 거였어요. 판결 전후가 아니라, 합의 전후도 아니고, 남편이 밥을 먹느냐 못 먹느냐로요.

처음엔 그게 무슨 신호인지 몰랐습니다. 경찰 조사 받을 땐 남편이 밥을 안 먹어도 '당연하지, 충격 받았으니까'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변호사가 반성문을 써야 한다고 말한 날부터는 달랐어요. 남편이 사흘을 거의 아무것도 입에 안 댔어요. 책상 앞에 앉아만 있고, 써진 건 이틀 만에 반 페이지 분량뿐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한 일은 변호사가 권한 것과 달랐어요. 법적 조언이나 사건 진행 관련 것들은 변호사님이 알아서 챙기셨으니까요. 제가 한 건 정말 단순했어요. 저녁 7시에 남편 옆에 앉았어요. 밥을 차리고, 숟가락만 놓고 나갔어요. 먹게 하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있게 놔뒀어요.

합의 과정도 마찬가지였어요. 변호사님이 피해자분 입장을 설명해주시고, 합의금 액수를 어느 정도로 생각하는지 물으셨을 때, 남편은 또 며칠을 밥을 제대로 못 먹었어요. 이번엔 죄책감 때문이었어요.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을 얼마나 상처 줬는지를 비로소 구체적으로 마주하게 된 거죠. 판사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현실의 누군가를 상처 입힌 내 행동에 대해서요.

그때 상담사가 한 말이 기억에 남아요. "음식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관심입니다. 억지로 먹게 하지 마시고, 그냥 계속 차려놓으세요." 그 말을 듣고 서야 깨달았어요. 제가 하는 모든 일들이 결국 그거였구나. 반성문을 잘 쓰게 해주는 것도, 합의를 빨리 진행하게 하는 것도, 변호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다 결국 남편이 자기 행동을 마주할 수 있게 옆에 있는 것이었어요.

선고까지 남은 기간, 가장 놀라웠던 건 판결문이 아니었어요. 선고 받던 날 아침, 남편이 처음으로 밥을 스스로 덜어먹었다는 거였어요. 계란말이를 먹고, "엄마, 이건 좀 된장국 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렇게 말했어요. 작은 말이지만, 그때 제 눈물이 났어요.

양형에 반성문이 영향을 미치는지, 합의 시점이 판결을 좌우하는지, 그런 법적 질문들은 변호사님이 더 잘 아실 거예요. 근데 저는 이제 그것보다 다른 걸 봐요. 우리 가족이 그 과정 속에서 어떻게 변했는지를요. 남편이 자기 행동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생각하고, 밥상 앞에 다시 앉을 수 있게 되었는지를요. 그게 어쩌면 법정에서의 어떤 합의금이나 감경 사유보다, 진짜 중요한 거였을지도 모릅니다.

요즘은 아침 여섯 시에 밥을 지어요. 남편이 일어나서 먹게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 알아요.

다시봄을 의 다른 글

전체 보기 →

댓글 3

이 게시판의 댓글은 회원만 볼 수 있습니다. 로그인 →

폭력·상해 의 다른 글

전체 보기 →
잠을 못 자니까 판단이 흐려지더라요[8]🌲둘이서 멈춤·07-14공판 증인신문 준비, 내 진술 순서가 이렇게 중요하다니[6]🌳욱했던그날·07-13합의금을 얼마씩 나눠서 낼지가 생각보다 중요하네요[6]HOT🌲둘이서 멈춤·07-13반성문에서 음주 핑계 빼니까 달라지네[8]HOT🌲둘이서 멈춤·07-12정당방위 주장했다가 깨달은 것들[9]HOT🌳욱했던그날·07-10합의금 선금이 판단을 바꾼다는 얘기가 사실이네요[6]HOT🌲둘이서 멈춤·07-10항소심 준비하면서 느낀 것들[6]HOT🌳욱했던그날·07-09벌금형 나올 것 같은데 합의금이랑 별개인가요[7]HOT🌳욱했던그날·07-08항소심에서 새로운 진술이 먹혀들었어요[6]HOT🌲둘이서 멈춤·07-08합의금 액수 결정, 생각보다 복잡했어요[5]HOT🌳욱했던그날·07-07합의금 납부 시점이 의외로 중요하네요[6]HOT🌲둘이서 멈춤·07-07반성문 쓸 때 '진짜 후회'를 어떻게 드러낼지가 문제였어요[7]HOT🌳욱했던그날·07-06피해자 진술서가 양형에 미친 영향, 생각보다 컸어요[5]HOT🌳욱했던그날·07-05복직 면접 보기 전에 합의서 받아야겠다[6]HOT🌲둘이서 멈춤·07-05공판 전 변호사와 나눈 대화가 생각날 때[6]HOT🌳욱했던그날·07-04동의서와 반성문, 순서가 중요하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6]HOT🌳욱했던그날·07-03합의금 분할 계획이 판사 심증을 바꿀까[8]HOT🌲둘이서 멈춤·07-03합의 늦춘 게 판사 인상에 영향을 줬을까[4]HOT🌳욱했던그날·07-02합의금 액수가 반성의 성실성을 말해주네요[8]HOT🌲둘이서 멈춤·07-02합의금 숫자에서 느낀 것[7]HOT🌲다시봄을·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