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단계에 접어든 지 두 달쯤 됐을 때 변호사님이 처음 제안하셨어요. 양형자료를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꾸려나갈 건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게 좋다고요. 그중에서도 금전 계획이 빠져선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한참 멍했어요. 반성문도 써야 하고, 재발방지 계획도 세워야 하는데, 돈 얘기까지 해야 한다니요.
하지만 생각해보니 당연한 거더라고요. 이 사건이 종결되고 나면 저는 다시 사회에 나가야 하잖아요. 그 과정에서 피해자분께 배상하는 문제도 있고, 앞으로의 생활비도 벌어야 하고, 교육 비용도 지속적으로 들고요. 그런 현실적인 부분을 외면하고 반성과 다짐만 쓰는 건 진정성이 떨어진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변호사님은 "법원이 보는 건 당신의 마음가짐만이 아니라, 당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건지에 대한 현실적인 계획입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엄마와 함께 앉아 가계부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지난 3년간 어떻게 돈을 썼는지, 앞으로 월급 중에서 얼마를 배상금으로 책정할 수 있을지, 생활비는 최소한 어느 정도는 필요할지를 계산했어요. 처음엔 너무 막막했어요. 현실을 직시하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거든요. 제가 월급을 다 가져갈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 제 소비 습관도 돌아보고, 엄마한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부분도 정확히 인식하게 되니까요.
첫 달을 지나보니 뭔가가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반성합니다. 다시는 안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그냥 말이었다면, 이제는 그 말이 실제 행동과 결부되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매달 통장에 배상금을 따로 빼놓고, 생활비를 줄인 부분들을 기록하다 보니, 내 약속이 종이 위의 글이 아니라 실제 삶의 변화라는 게 점점 명확해졌습니다. 변호사님은 이런 과정 자체가 양형자료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법원에 제출할 때 단순히 금전 계획표뿐만 아니라,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계획을 세우게 됐는지, 지난 한 달간 어떻게 실행했는지를 함께 보여주면 된다고요.
솔직히 지금도 완벽하진 않습니다. 가끔 필요 없는 물건을 사고 싶은 충동이 생기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엄마가 제 통장 내역을 함께 보면서 "네가 좀 자랐네"라고 한 말이 자꾸만 떠올라요. 변호사님과 상담사님과 엄마가 일관되게 말하는 게 있거든요. 진정한 반성는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거, 그리고 그 행동이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실제 삶의 변화라는 거요. 금전 계획이 처음엔 번거롭고 우울하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제가 정말로 달라질 수 있다는 작은 증거가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