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님이 "생활 기록을 정리해두세요"라고 했을 때는 뭔가 거창한 걸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출근 기록, 운동 일지, 교육 이수증 같은 객관적인 증거들 말이에요. 그래서 지난 몇 개월 동안 그런 것들을 열심히 모았습니다. 회사에서 발급받은 출근 기록, 헬스장 멤버십 카드, 상담사 추천서. 다 중요한 거고, 실제로 법정에 제출할 자료들이니까요.
근데 어제 자료를 정리하다가 생각해본 거예요. 이 서류들이 정말 내가 변했다는 걸 보여주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출근 기록은 지각 안 했다는 뜻이지만, 그게 내가 얼마나 힘들게 아침을 맞이했는지는 알 수 없잖아요. 처음 3개월은 회사 복도에서 자꾸 눈치를 봤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나 싶어서요. 지금은 좀 나아졌는데, 그런 과정은 기록할 수 없어요.
가족 식사도 마찬가지예요. 사건 직후에는 집에 가기가 정말 싫었어요. 아내 표정, 아이들 반응이 두려워서요. 근데 지난달부터는 주중에도 일찍 퇴근해서 저녁을 함께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들이 학교 얘기를 할 때 제대로 들어줄 수 있게 말이에요. 이건 어떻게 증명하죠? 가족 사진을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고.
변호사님과 통화했을 때 말씀하신 게 있었어요. "수치 기반 증거도 중요하지만, 판사는 결국 사람을 봅니다"라고요. 그 말이 며칠 내내 맴돌았어요.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가 다시 생각해보니, 결국 일상을 똑바로 사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걸 있는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게 반성문이나 진술서 같은 글이라는 거죠.
요즘은 그래서 일기를 더 상세하게 쓰고 있어요. 오늘 퇴근길에 뭘 생각했는지, 운동하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했는지, 가족과 밥을 먹을 때 뭘 느꼈는지 같은 것들 말이에요. 증거로 쓸 수 없는 것들이지만, 나 자신이 얼마나 진지하게 이 시간을 살고 있는지를 적어두는 것 같아요. 혹시 변호사님이 필요하면 참고 자료로 드릴 수도 있고요.
서류상 기록도 중요하겠지만, 결국 가장 설득력 있는 자료는 내가 매일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거라고 이제 알겠어요. 서류는 "했다"를 증명하고, 나의 글과 말과 행동은 "변했다"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