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님이 반성문 초안을 보고 의견을 주셨는데, 읽다 보니 제 글이 얼마나 형식적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충동적이었습니다" "깊이 반성합니다" 이런 식의 문장들만 가득했거든요. 법원에 제출하는 문서니까 그렇게 써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변호사님 말씀은 달랐습니다. 법조인도 결국 사람을 읽는 일을 하고, 정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중요하게 본다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처음부터 다시 썼습니다. 이번엔 그날 일이 아니라, 그 이후 제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중심으로 썼어요.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 직장에서의 작은 책임들, 아내와 아들과 함께 밥 먹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적으려고 했습니다. 변호사님이 지적하신 대로 "구체적이고 담담하게" 하려다 보니 막힌 부분들이 생겼어요.
네 번째 버전까지는 여전히 자기 합리화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제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설명하려는 부분들 말이에요. 변호사님은 그런 설명은 필요 없다고 하셨습니다. 법원 입장에선 변명처럼 들릴 수 있다는 거죠. 대신 지금 이 순간 제가 무엇을 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 계획인지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제야 이해가 됐어요. 반성문이라는 게 과거를 재판하는 게 아니라 미래를 약속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다섯 번째 버전을 완성했습니다. 이번엔 전에 비해 훨씬 짧고, 불필요한 수식어도 빼고, 제가 실제로 경험한 것들만 남겼어요. 퇴근 후 운동을 다시 시작한 것, 직장 동료들과 조금씩 신뢰를 쌓는 중이라는 것, 매일 아침 아들 학용품을 챙겨주는 일상 같은 거요. 작아 보이는 것들이지만, 이게 제 변화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변호사님께 이번 버전을 보내기 전에 아내에게 읽어달라고 했어요. 솔직한 반응을 듣고 싶었거든요. 아내는 조용히 읽더니 "이게 너 같아"라고만 했습니다. 그 말이 어느 느낌인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나쁜 의미는 아닌 것 같았어요. 적어도 제가 처음 쓴 글처럼 남이 쓴 것 같진 않다는 뜻 같았습니다.
이제 변호사님 의견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또 고쳐야 할 부분이 있을 거 같지만, 이 과정 자체가 제게는 필요한 것 같습니다. 계속 쓰고 지우고 다시 쓰면서, 제 행동의 무게를 조금씩 느끼게 되니까요. 완벽한 반성문을 쓰는 것보다 그게 더 중요한 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