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님이 공판 준비 과정에서 증거 목록을 정리하라고 했을 때가 생각난다. 처음엔 뭐가 증거이고 뭐가 증거가 아닌지 구분도 안 갔다. 수사 단계에서는 검사가 주도적으로 자료를 모으니까 내가 할 일이 적었는데, 공판에 가까워질수록 내 쪽에서도 적극적으로 챙겨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우선 변호사님과 함께 정한 기본 원칙은 '검찰이 제출한 자료와 우리가 제출할 자료를 명확히 분리하기'였다. 검사 측에서 제출한 수사기록, 진술조서, 현장 사진 같은 것들은 따로 폴더를 만들어서 정리했다. 다음은 우리 측에서 제출할 자료들이었는데, 여기가 핵심이었다. 직장 복직 증명서, 회사에서 받은 인사고과 기록, 근태 현황 같은 것들이 양형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컸다.
특히 신경 썼던 부분은 타임라인이다. 사건 이후 내가 어떤 변화를 보였는지를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는 게 중요했다. 언제 직장에 복직했고, 언제부터 운동을 시작했고, 언제 가족과 외식을 다시 했는지 같은 일상의 변화들이 다 기록되어야 했다. 변호사님은 이런 것들이 '반성과 갱생의지'를 보여주는 간접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해줬다.
문서 증거 외에 사진 자료도 챙겼다. 직장 복직 후의 근무 사진, 운동하는 모습, 가족과 함께한 모습 같은 것들인데, 개인정보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변호사님과 상담해서 어떤 사진을 제출할지 선택했다. 과한 연출은 피하되, 일상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자료들을 고르려고 노력했다.
한 가지 배운 점은 증거 목록을 정리할 때 너무 많은 자료를 한 번에 제출하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변호사님은 오히려 '핵심 자료 몇 개를 임팩트 있게 제출하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그래서 수십 개의 자료 중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 우리 쪽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것들을 선별하는 과정을 거쳤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과정 자체가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훈련이 됐다. 지난 1년간 뭘 했는지, 어떻게 변했는지를 증거 자료로 만들어 정리하다 보니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해왔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공판장에 가기 전에 변호사님과 자료를 함께 검토하면서 어느 부분을 강조할지도 준비하고 있다. 혼자 준비할 때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다.
같은 상황에 있는 분들이라면 증거 목록은 일찍부터 시작하는 걸 권한다. 마지막 순간에 서둘러 모으면 누락되는 게 있을 수 있고, 여유를 가지고 준비하면 심리적으로도 여유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