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을 받아 든 그날은 손이 떨렸어요. 집에 와서 남편과 함께 한 줄 한 줄 읽었는데, 예상했던 결과지만 막상 문서로 마주하니 현실이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석 달 정도 지났는데, 요즘 생각해보니 제일 놀라운 건 시간이 정말 그냥 흐른다는 거예요. 슬픔이나 분노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매일을 버티는 데 그 감정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습니다.
처음 한두 달은 외출이 힘들었어요. 동네 사람들과 마주칠까봐, 누군가 저희를 어떻게 생각할까봐요. 그런데 결국 사는 게 그렇더라고요. 신문 읽듯이 다른 사람 일은 넘어가고, 각자 자기 집 문제가 산더미니까 우리 집을 계속 살펴보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물론 처음엔 섭섭한 시선도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니 그것도 자연스러워졌어요.
남편은 요즘 아침마다 텃밭에 나가요. 저도 작년에 시작했는데, 이제 그게 우리 부부의 말없는 시간이 됐습니다. 판결 이후로는 더 자주 밭을 가는 것 같아요. 작년에 제가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보니, 저도 텃밭에서 많이 위로받았다고 했더라고요.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손으로 흙을 만지고, 물을 주고, 자라나는 것들을 보는 게 이 시기에는 약처럼 작용했어요.
일주일 전에 동네 부녀회에서 자원봉사 모임이 있었어요. 제가 예전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곳인데, 사건 이후로는 당분간 멀어졌습니다. 그런데 회장님이 직접 찾아오셔서 다시 나와달라고 하셨어요. 처음엔 거절하려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 모임이 제 일상의 일부였고, 돌아가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주 처음 나갔을 땐 어색했지만, 부녀회 분들이 처음처럼 대해주셔서 호흡을 맞출 수 있었어요.
아직도 밤에 잠을 설 때가 있습니다. 판결문을 다시 들춰보거나, 혹시 항소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아침이 오면 밥을 해야 하고, 밭에 물을 줘야 하고, 이웃분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게 지금의 일상입니다.
누군가는 이 시간을 '회복'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냥 '다시 시작'이라고 느껴요. 완전히 처음부터가 아니라, 무게를 한 짐 덜고 걸어가는 느낌이랄까요. 비슷한 상황에 계신 분들이라면 알 것 같아요. 선고 후의 이 시간이 얼마나 애매롭고, 동시에 소중한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