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장을 제출하고 나서 보름이 지났다. 변호사와 마지막 상담을 마친 날, 집에 돌아와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제 더 이상 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1심 판결문을 받았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무게감이었다. 그때는 충격과 분노와 현실 부정이 뒤섞여 있었는데, 이번엔 좀 더 담담했다. 몸이 이 상황에 적응한 건지, 아니면 이미 최선을 다했다는 확신 때문인지 자신할 수 없지만 어쨌든 다른 마음가짐이었다.
항소심 준비 과정이 시작되면서 처음으로 깨달은 게 있다. 1심 진행 중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구체적이었다. 검찰 조사에 응하고, 변호사 면담에 가고, 이수명령 교육 받으면서 출석표를 모으고, 합의를 위해 연락을 취하고, 일자리를 찾으려 애썼다. 모두 눈에 보이는 행동들이었고, 각각이 양형자료 서류로 변환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항소심은 다르더라. 변호사가 법률적 주장을 구성하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판결부터 항소장 제출까지는 법조인의 영역이고, 나는 그냥 기다려야 했다. 그 기다림이 생각보다 길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것들을 챙기게 됐다. 지금까지 진행해온 교육 프로그램을 더 성실하게 다시 들었다. 이미 이수를 끝낸 것도 있지만, 보수 교육 차원에서 온라인 강의를 다시 받거나 자료집을 읽으며 정리했다. 변호사는 "혹시 항소에서 다시 판단하게 될 상황에 대비해서"라고 했지만, 실은 손 놀릴 곳이 필요했던 것 같다. 막연한 불안감을 손으로 만지는 행위들로 대체하는 느낌이었다.
직장 문제도 다시 생각해봤다. 1심 이후로 신상정보 등록 상태에서 일자리를 구했고, 현재 근무 중이다. 항소심이 진행되는 동안 이 일자리를 유지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느껴졌다. 부장님은 내 사건을 알고 있고, 그래도 계속 나를 고용하고 있다. 그것 자체가 양형자료다. 나를 두 번째 기회를 주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 있다는 증명이다. 그래서 최근 몇 주간은 일에 더 집중했다. 마감을 앞당기고, 실수를 줄이고, 퇴근 후에도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항소심과는 직접 관계없을지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었다.
또 하나는 일상의 기록을 더 정성스럽게 남기기 시작했다. 언제 어떤 교육을 들었는지, 출근한 날들이 몇 날인지, 금주를 유지했는지 아닌지. 이런 것들을 노트에 적어둔다. 항소 판결이 나올 때 혹시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것보다는, 이렇게 기록하는 행위 자체가 내게 필요했던 것 같다. 패턴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스스로를 재정의하는 과정이었다.
항소심 준비는 내게 한 가지를 분명히 해줬다. 판결이 어떻게 나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없어지진 않는다는 것. 출근 기록, 교육 이수, 금주 유지, 일상의 작은 책임들 — 이런 것들은 판사의 펜 끝에서 나올 결과와 무관하게 내 삶에 쌓여 있다. 항소심 준비 과정이 길었던 만큼, 그 기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결과 대신 과정에 손을 잡혔던 몇 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