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합의가 서두르는 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상대방도 입건됐고, 쌍방폭행이니까 검사도 선처할 거라고 막연히 기대했었다. 그런데 변호사가 "법원 일정이 나오면 게임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했을 때 처음으로 긴장했다.
우리 사건은 입건 후 약 2개월 정도 지나서 법원에서 1심 공판 일정을 통보했다. 그 순간부터 뭔가 달라졌다. 검사와의 합의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전까지는 좀 여유로웠다. 상대방 변호사도 느슨했고, 우리 쪽도 진료비 영수증 정리하고 반성문 작성하고 하는 정도로 천천히 진행했다. 하지만 법원 일정이 공지되자마자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변호사가 설명해준 것에 따르면, 판사 입장에서는 합의 여부가 양형에 정말 중요하다고 했다. 단순히 합의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언제 합의했는지가 중요하다는 게 핵심이었다. 공판 직전에 급하게 합의한 것과 초반부터 성의 있게 진행한 합의는 판사 눈에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는 거였다. 그래서 우리는 법원 일정이 공지된 이후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실제로 그 이후로는 일정 관리가 중요했다. 우리는 법원 공판일까지 정확히 몇 주가 남았는지 계산했고, 그 사이에 상대방과의 합의를 마무리하기 위해 일주일 단위로 일정을 짰다. 진료비 영수증 제출, 반성문 최종 검토, 합의금 액수 조정, 합의서 서명까지 모두 타이트하게 스케줄링했다. 변호사는 공판 예정일 최소 2주 전에는 합의가 완료돼야 판사가 그걸 양형 자료로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가장 중요했던 부분은 반성문 작성 시점이었다. 초안을 너무 일찍 쓰면 나중에 합의가 진행되면서 수정할 게 생기고, 너무 늦게 쓰면 변호사와 여러 번 검토할 시간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우리는 합의금 액수가 어느 정도 윤곽잡힌 시점에 반성문을 다시 썼다. 그래야 구체적인 합의 내용과 진료비, 위자료 부분을 반성문 안에 자연스럽게 녹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피해를 인정하고 OO원의 합의금으로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 이런 식으로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상대방과의 일정 조율도 생각보다 복잡했다. 상대방도 일이 있고 변호사와 만날 시간도 맞춰야 했다. 우리 변호사가 상대방 변호사와 직접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합의서 초안을 왕복시키고, 합의금 액수를 조정하고, 최종 서명 날짜를 정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지금 충분히 성의 있게 진행하고 있다'는 인상을 판사에게 남기는 게 중요하다고 변호사가 강조했다.
결국 공판 예정일 10일 전에 합의서에 최종 서명을 했다. 변호사는 이 정도면 판사가 충분히 좋게 본다고 했다. 공판 당일 판사는 합의 경위를 물었고, 우리는 언제부터 성의 있게 진행했는지, 상대방과 어떻게 합의했는지를 간단히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법원 일정을 받은 이후로도 급하지 않게, 하지만 책임감 있게 합의를 진행했다는 게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판결을 받았을 때 양형 이유를 들어보니, "피고인이 초기 단계부터 성의 있는 합의 태도를 보였고, 상대방의 피해를 인정하며 상당한 배상을 제시했으며, 반성의 정도가 충분하다고 판단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