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초반에는 아내가 내 편이라고 생각했어요. 당연히. 그런데 합의 과정이 길어지면서 아내가 내게 물어본 게 있었습니다. "너는 저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 있어?" 한 마디였는데, 그게 요즘 자꾸만 떠올라요.
회식 후 싸움이었으니까 처음엔 술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내 잘못도 있지만 상대도 있다고. 변호사님도 처음엔 우발적 쌍방폭행이니까 합의금이 많지 않을 거라고 했고요. 그래서 처음 제시한 금액이 꽤 낮았습니다. 상대 변호사가 반박했을 때도 "이 정도면 충분하지" 하면서 버텼어요.
그런데 아내가 그 말을 한 건 합의금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였어요. 상대방 의료비와 위자료를 놓고 밀고 당기고 있을 때. 아내는 내 앞에서 그 말을 꺼냈습니다. "저 사람도 직장 있고, 저 사람도 가족 있지 않아?" 그리고 덧붙였어요. "너는 자기 처지만 생각하는데, 저 사람도 지금 얼마나 힘들 것 같아?"
그때 느낀 게 좀 이상했어요. 화난 것도 아니고, 설득당한 것도 아닌데. 뭔가 자기 얼굴을 거울로 보는 느낌이랄까. 아내가 내 행동을 설명한 게 아니라, 내가 설명하지 못한 부분을 지적한 거였거든요. 합의금이 문제가 아니라 내 태도가 문제라는 뜻이었어요.
그 다음부터 조금 달라졌습니다. 변호사한테도 솔직하게 말했어요. 상대방 진료비는 전액 부담하겠다고. 위자료도 합리적인 수준에서 맞추자고. 변호사님은 "결정 잘 하셨습니다"라고만 했는데, 그건 법적 판단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승인이었던 것 같아요.
반성문을 다시 써야 했어요. 처음 것들을 보니 죄책감보다는 자기합리화가 더 많았거든요. "순간의 실수", "상대방도 때렸다", "술 때문에" 이런 식으로. 그런데 아내의 질문을 받고 나니 그게 얼마나 뻔한 말인지 보였어요. 판사는 이런 말들을 수백 번 들었을 텐데, 내가 뭘 달리 보여주려고 하는 건지.
그래서 반성문에 썼어요. 상대방 가족이 겪었을 피해와 불편함을 내 이름으로 직접 상상해본 부분들을요. 의료비 낼 때 상대방이 느꼈을 미안함이나 불편함도. 내가 했던 행동이 그 사람의 일상을 어떻게 깼는지도. 그건 사실 법적으로 필요한 말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제 자신을 위해 필요한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판사한테 보여줄 양형자료로서의 반성문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 한 반성을 담은 반성문을 쓰려고 노력했어요. 그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아내 말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
사건이 끝나도 그 말은 자꾸 떠올라요. "저 사람도 가족 있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