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님이 양형자료 초안을 보여주셨을 때 처음엔 뭐가 다른지 몰랐어요. 반성문이랑 비슷한 내용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 전혀 다르더라고요. 반성문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일관이고, 양형자료는 '왜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했는가'를 법원에 설득하는 문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특히 동기 부분에서 생각을 바꿔야 했어요. 저희 사건은 회식 자리에서 술 취한 상태에서 시작된 거긴 한데, 그것만 쓰면 '술 먹고 싸웠네' 이렇게 됩니다. 변호사님은 "술은 감경 사유가 아니라 오히려 악화 사유일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대신 그날 구체적으로 뭐가 있었는지, 상대방이 먼저 어떤 언행을 했는지, 제가 왜 '피해를 입었다고 느꼈는지'를 차근차근 풀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경위는 또 달랐어요. 이건 시간 순서대로 누가 뭘 했는지 객관적으로만 적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제 감정 해석이 들어가면 안 되고, 법원이 영상이나 목격자 진술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만 써야 한다고요. 경찰 조서랑 비슷하지만 좀 더 정중하고 법적인 표현으로. 여기서 실수하면 나중에 검사나 판사가 "피고인 진술이 모순된다"고 지적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제일 도움이 됐던 건 이 둘을 분리하면서 자기기만에서 벗어났다는 점이에요. 처음엔 "그날 상대가 시비를 걸었고, 제 자존심이 상했고, 그래서 싸움이 났다" 이렇게만 생각했거든요. 이건 반성이 아니라 자기정당화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양형자료를 쓰면서 시간 순서를 정확히 추적하니까, 실제로는 제가 먼저 말을 높인 부분도 있고, 상대가 피했는데 제가 따라간 부분도 있더라고요. 그게 보이니까 진정한 책임감이 생겼어요.
합의금 협의할 때도 영향이 있었습니다. 양형자료에서 "우발적 충동이었고, 상대방도 신체 접촉을 먼저 했으며, 사건 직후 합의 의사를 표현했다"는 부분이 들어가니까 상대방도 좀 더 현실적으로 합의금을 생각하게 된 것 같았어요. 처음엔 합의를 거부했는데, 변호사가 법원에 제출할 양형자료 초안을 보여주자 "아, 이 정도면 형량이 그리 크지 않겠네"라면서 돌아섰거든요.
가장 큰 깨달음은 법원도 결국 사람이라는 거예요. 내가 쓴 반성의 말이 진정한지, 아니면 형량을 낮추기 위한 거짓인지 간파한다는 뜻입니다. 동기와 경위를 명확하게 분리해서 적으니까 "이 사람은 최소한 자기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능력은 있겠네" 이런 신뢰가 생기는 것 같았어요. 다음 주에 법원 제출하는데, 이 부분이 양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못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