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선고를 받은 지 어느덧 4개월이 됐습니다. 판결문을 받아 들던 그날은 마치 꿈처럼 느껴졌는데, 실제로는 그 이후가 진짜 과제더라는 걸 이제야 깨닫고 있어요. 변제도 완료했고, 합의서도 제출했고, 반성문까지 패키지로 정리한 것들이 양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는 판결문 한두 줄로 다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호사님이 말씀하신 건 "합의 여부가 양형에 미치는 비중은 개별 사건마다 다르다"는 것이었어요. 제 경우엔 전액 변제를 했다는 점이 집행유예 판단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거라고 추측할 뿐, 명확한 인과관계를 알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검찰 단계에서 "이미 피해를 회복했으니 추가 처벌이 과하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의견을 제출했다는 기록이 판결문에 반영돼 있었고, 그게 결과적으로 징역형이 아닌 벌금형으로 나온 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변호사님은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직면한 현실은 그것과는 다른 문제예요. 신용정보 조회를 해봤더니 횡령 사실이 등록되어 있고, 앞으로 5~7년은 이 기록이 남을 거라고 했습니다. 은행 대출은 물론이고, 신용카드 승인도 거절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죠. 판결문에 "피고인의 반성 정도가 진지하다"는 표현이 있었지만,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그게 무슨 상관인가 하는 거겠지요. 숫자로 된 위험도 평가가 전부입니다.
직장 복귀도 생각보다 복잡했어요. 회사에서는 합의서를 받아들였고 공식적으로 재고용을 제시했습니다. 다행히 회사가 합의를 선택한 만큼 형사 처벌을 피할 수 있었고, 그 대신 변제라는 실질적 책임을 다했으니까요. 하지만 같은 팀 동료들과의 관계는 판결문이나 합의서로 회복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알고 있고, 그 정보가 어떻게 퍼질지 통제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불안감입니다. 전직 회사 사람들과 연락이 두절된 지도 오래됐고요.
요즘 드는 생각은, 양형자료를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인생 전체의 영향을 지워주지는 못한다는 거예요. 변제금 800만원은 몸으로 일해서 번 돈이고, 그 과정에서 가족 관계도 상처를 입었습니다. 부모님에겐 결국 말씀드렸고, 엄마는 한동안 말씀을 안 하셨어요.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그 침묵의 기간이 얼마나 길었는지는 판결문에 기록되지 않습니다.
항소를 할지 말지 고민하는 중입니다. 변호사님은 현재 판결이 실질적으로 유리한 편이라고 했지만, 기록에 남은 이 사건이 계속 따라다닐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요. 앞으로 어떤 면접을 보든, 어떤 신용조회를 당하든 이 기록은 남아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남은 건 시간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5년을 견디고, 10년을 버티고, 나머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만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