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선고장을 읽는 법

🌲· 약 2개월 전· 👁 14· ♥ 4· 💬 3

판사가 "유죄를 인정합니다"라고 읽어내릴 때, 나는 내 손이 떨리는 걸 느꼈다. 그 다음 몇 분간 법정에서 나온 말들은 마치 물 아래서 들리는 소리처럼 둔했다. 변호사가 팔을 잡아줬고, 그제야 깨어난 것 같았다. 선고가 끝나고 사건이 종결됐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요즘 내가 자주 하는 생각은, 판결문이라는 게 얼마나 낯선 종류의 글인가 하는 것이다. 공식적이고 법적인 언어로 내 행동을 설명해 놓은 종이 한 장. 처음엔 그걸 읽는 게 두려웠다. 내가 뭘 했는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얼마 뒤 나는 그걸 읽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왜냐면 그게 끝이 어디인지 명확하게 보여주니까. 판결문은 이야기의 마지막 페이지였다.

가장 어려웠던 건 판결이 나온 뒤의 일상이다. 법정에서 나오는 순간, 사건은 법적으로는 종료되지만 내 삶에서는 시작되는 느낌이랄까. 회사로 돌아갈 때까지 2주일 정도를 집에만 있었는데, 그 기간이 정말 길었다. 아내는 내가 어떤 얼굴로 직장에 가야 할지 걱정하는 게 보였다. 나도 물론 걱정했다. 하지만 가야 했다. 법정에서 유죄를 받은 사람이 그 다음 날부터 먹고살아야 한다는 게 현실이다. 누군가는 그걸 잔인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한테는 그게 구원 같았다.

직장복귀 첫날은 예상보다 낫다고 할 수도, 나쁘다고 할 수도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다르게 보는 건 맞는데, 그게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차갑지는 않았다. 아마 누군가는 나처럼 행동 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일은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일을 했고, 일을 계속하고 있다. 월급을 받고, 통장에서 의무금을 빠진다. 그리고 퇴근 후엔 운동을 한다.

요즘의 나는 판결을 한 구절처럼 생각한다. 문장으로 끝났으니 이제 다른 문장을 써야 한다는 의미로.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다음 문장은 내가 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선고장을 처음 읽었을 때는 그런 생각을 못 했는데, 요즘은 그렇다. 아마 시간이 그걸 가능하게 해준 건 아닐 거고, 그냥 매일 나타나서 무언가를 한다는 행위 자체가 그렇게 한 걸 거다.

어제는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아내가 준비한 밥을 먹으면서 아이가 학교 얘기를 했다. 나는 들었다. 그게 다다. 하지만 예전 같으면 그 시간 동안 나는 다른 데 있었을 것 같다. 지금은 여기에 있다.

다시일어선 의 다른 글

전체 보기 →

댓글 3

🌲· 약 2개월 전
판결 후 일상이 시작된다는 표현이 정말 와닿네요. 저도 아직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어서요.
🌲· 약 2개월 전
선고 받은 뒤 법정을 나오면서 느끼는 그 공허함이 정말 있네요. 판결문을 읽는 게 두렵기도 했지만, 읽고 나니까 오히려 마음이 놓였어요. 이제 앞으로만 가야 한다는 확신이 생겼거든요. 직장복귀 첫날이 생각보다 나았다니 다행입니다. 저도 그 경험이 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익명사용자· 약 2개월 전
판결문을 읽는 게 두렵다가 결국 필요한 일이라는 걸 깨닫는 부분이 정말 와닿았어요.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처음엔 선고장을 펼치기가 손에 땀이 날 정도로 힘들었어요. 하지만 글쓴이분 말처럼 그게 끝이라는 걸 명확히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조금은 달라졌던 것 같아요. 특히 법정에서 나오는 순간 사건은 끝나는데 삶은 시작된다는 표현이 정말 정확하다고 느껴졌어요. 저도 일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생각보다 길었거든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어떨까 봐 걱정했던 마음도 많이 공감돼요. 지금은 외래 상담받으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데, 글쓴이분처럼 일상 속에서 계속 살아가는 게 그 자체로 의미 있다는 걸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로그인 →

자유게시판 의 다른 글

전체 보기 →
변호사 선임 후 달라진 일정 관리법[4]N🌲막막한새벽·17:17공판준비기일 통보받고 정신 차렸어요[6]🌲합의앞두고·06:50합의금 얘기를 꺼낼 때가 왔어요[4]HOT🌲다시일어선·어제법원 일정이 자꾸 밀리네요[10]HOT🌲둘이서 멈춤·07-15첫 변호사 상담 받고 든 생각[8]HOT익명사용자·07-15공판 기일 전에 생각할 것들[12]HOT🌲다시일어선·07-15공탁금 재공탁할 뻔했어요[6]HOT🌲합의앞두고·07-15직장 복귀, 이제 시작이네요[8]HOT🌲막막한새벽·07-141심 판결 앞두고 마음이 자꾸 흔들려요[8]HOT🌲무너진일상·07-14엄마가 법정에 가기 싫다고 했다[8]HOT🌲달림이3년·07-141심 판결까지 남은 기간,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8]HOT익명사용자·07-14검찰 송치, 이제 기다리는 수밖에[12]HOT🌲막막한새벽·07-13합의금 낼 타이밍, 결국 변호사와 싸웠다[6]HOT익명사용자·07-12아침 산책이 일상이 되었어요[8]HOT🌲다시봄을·07-12양형자료 패키지 준비하다가 빠뜨린 게 있었어요[10]HOT익명사용자·07-11공판 전에 변호사랑 진술 맞춰야 하나요[10]HOT🌲둘이서 멈춤·07-11복직 허락받고 느낀 것[8]HOT🌲끊어낸핸들·07-11상대 진술이 자꾸 바뀌어서 혼란스러워요[8]HOT익명사용자·07-09증거 정리하다 놓친 걸 발견했어요[10]HOT익명사용자·07-09법원에서 받은 교육 프로그램을 마쳤어요[9]HOT🌲다시일어선·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