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부엌에서 반찬을 준비하고 있었다. 평범한 풍경인데, 요즘 우리 집에서는 이게 그렇게 자연스러운 장면이 아니었다. 예전 같으면 아내가 저를 보면 얼굴이 굳곤 했거든. 지금도 완전히 풀린 건 아니지만, 어제는 달랐다.
저녁을 먹다가 작은 딸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담임선생님이 뭔가 재미있는 농담을 했다고 했는데, 그 설명이 워낙 엉뚱해서 아내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주 큰 웃음은 아니었지만, 그게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저도 그 웃음을 들으면서 한동안 잊고 있던 기분을 다시 느꼈다.
아들은 요새 아빠 역할을 내게 자연스럽게 맡기기 시작했다. 지난주에는 자기 숙제를 봐달라고 했고, 이번주에는 학교 야구대회에 가달라고 했다. 그 요청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나이가 되었다. 딸도 마찬가지다. 손을 잡고 싶어 하는 시간이 늘었다. 집에서 나가기 전에 뭔가를 챙겨달라고 부르는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아내와의 일상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예전처럼 대화가 많지는 않지만, 침묵이 어색하지 않아졌다. 지난달에는 아내가 주말에 뭘 할까 내 의견을 물었다. 그동안은 내 의견을 묻는 일이 없었으니까. 영화를 본다거나, 아이들과 밖에 나간다거나 하는 사소한 결정에 내가 다시 포함되었다는 뜻이었다.
어제 아침에는 아내가 내 출근 시간에 맞춰서 아침을 챙겨놨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반찬으로. 그런 작은 신경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 알겠다. 사건 초반에는 아내가 나한테 등을 돌렸을 때가 정말 길었다. 말도 거의 없었고, 밥도 따로 먹는 날이 많았다. 아이들이 엄마는 왜 아빠를 안 봐? 이런 질문을 할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지금은 달라졌다.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지만, 가능성이 보인다. 아내가 어제 웃은 그 웃음이 그걸 증명했다. 그리고 그 웃음 때문에 나는 오늘도 일을 하러 나갈 수 있다. 퇴근할 때까지 버틸 수 있다. 집에 돌아갔을 때 또 다른 평범한 저녁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내일도 같은 날이 반복될까? 아마도. 그리고 그걸 바란다.